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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 반려동물 장례시설에 관한 이야기

반짝반짝 빛나는 한보리 2018.02.06 22:12

오늘 '반려동물 장례시설'에 관한 기사를 또 접했습니다. 


(http://www.hankookilbo.com/v/6dc27375186a4df9bba3d46ab1eb47b2 ← 한국일보 기사 '동네 앞 반려동물 화장장 반대...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은 빠르게 늘고 있고 그에 따라 반려동물 장례에 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는데, 혐오시설로 인식되어 시설 설립도 어려운가 봅니다. 


매번 이슈가 되지만 해결은 안되고 있는 것 같은 '우리나라의 동물권', '우리나라의 반려견 장례문화'


2012년에 '우리나라의 동물권'에 관련하여 썼던 비슷한 글을 공유합니다.

6년 전에 쓴 글과 지금이 별다르게 나아진 것 없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우리나라가 동물들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돌고래 '제돌이'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우리나라에 제돌이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돌고래 방사를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매일같이 각종 언론매체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 언론이라고 불리는 언론사에서는 '박원순표 동물보호'에 극찬을 보내고 보수 언론으로 일컬어지는 언론사에서는 '반쪽짜리 복지'라며 날을 세운다. 진보 세력의 박원순 감싸기와 보수 세력의 박원순 헐뜯기가 매일같이 양립한다.

 

동물권은 오래전부터 세계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어왔다. 동물복지 선진국인 유럽 국가들은 19세기 이전부터 동물의 생명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고 그에 따른 뜨거운 논쟁을 계속해왔다. 얼마 전 방사에 성공한 '톰'과 '미샤'에 대해서도 영국 내 찬반 대립이 치열했다. 하지만 '톰'과 '미샤'를 둘러싼 논쟁과 '제돌이'를 둘러싼 논쟁은 조금 다르게 들린다.

 


영국은 한 사람당 2마리에서 3마리의 반려동물에게 의료보험을 적용해준다. 동물의 생명 역시 사람의 생명처럼 존중받아야 하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법적으로 증명해준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반려동물에 대한 의료보험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작년 7월부터 병원비에 부가세까지 부담하도록 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미흡한 동물권 정책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우리나라의 현행법 상 반려동물은 기본적인 존중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물 보호법과 폐기물 관련법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죽고 나면 '쓰레기' 신세가 된다. 10년 넘게 키웠던 반려동물이 죽었을 경우 가족은 반려동물의 사체를 하얀색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려야한다. '생활 폐기물'로 구분되기 때문에 태워서도, 묻어서도 안 된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가족이 죽었다는 슬픔을 이겨내기도 전에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을 스스로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치욕스러운 순간을 맞아야 한다. 동물의 생명도 존귀하다는 각종 매체의 메시지가 하루에도 수십 건 넘게 전달되지만 정작 나라에서는 다 쓰고 고장 난 장난감 버리듯 동물의 생명권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버리라고 강요한다.

 

복지 정책이 정치적 쟁점이 되는 것은 제한된 예산 하에서 누구에게 어떤 혜택을 얼마나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때문이다. 어느 정당도 결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서 정치적 논의를 하지는 않는다. '생명의 존엄성'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의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매일같이 언론을 뜨겁게 달구는 '제돌이'가 동물 복지 정책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다소 불편하다. 동물에게 풍요로운 삶의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을 떠나 동물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조차 논의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동물권'이라는 그럴싸한 명분하에 이루어지는 정당간의 이권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직 많은 한국 사람들은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흑인에게도 인권이 있는가?', '여성의 투표권이 보장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비웃음을 샀던 시기가 있었다. 흑인의 인권도, 여성의 투표권도 정치적 쟁점이 될 수 없는 절대적 가치가 된 오늘날 우리는 '동물의 생명 존중'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정치적 색을 입히고 있다.

 

어느 누구도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할 권리는 없다. 숨이 끊어졌다고 해서 쓰레기 취급할 수 있는 권리도 없다. '동물권'에 대한 정치적 공방은 동물의 생명도 '생명'으로 존중해준 뒤에 벌여도 늦지 않다.





위 글은 개인적인 견해가 담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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